아 리 랑(我離郞)전 설
○ 박용일 정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멀고 먼 옛날, 어느 한 지역에 김씨라는 사람이 살고있었다. 천성적으로 욕심이 많고 벼슬욕이 가득한 김씨는 요행 판서라는 벼슬자리를 가지게 되였는데 판서로 되는 날부터 부근의 농토를 널리 장악하고 농군들에게서 가렴잡세를 가혹하게 받아내는 바람에 농군들은 끼니를 잇기 힘들 정도로 살아가기 바빴다.
거기에 또 설상가상으로 그해따라 극심한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거의 굶어죽을 형편으로 되였지만 김판서는 가혹한 수탈을 멈추지 않았다. 그 바람에 농군들의 생각은 극으로 치달려 김판서를 없애버릴 모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김판서네 집에는 성부라고 부르는 얌전한 노비와 리랑이라고 부르는 억대우같은 노복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그들의 사랑이 한창 무르익어 갈 때 리랑도 이번 농군들의 모의에 깊이 가담하고있었다.
물론 성부는 사랑하는 리랑의 일을 반대할리가 없었다.
며칠동안의 노력으로 농군들의 모사계획은 빈틈없이 무르익어 갔다. 마침내 거사일로 작정한 시월 그믐날이 닥쳐왔다. 달도 없는 캄캄한 어둠을 틈타 리랑을 비롯한 농군들은 김판서집으로 들이닥쳐 한창 농군들의 피땀으로 벌어들인 은량을 세고있는 김판서를 처단하고 대부분의 아전들을 죽여버렸다.
그런데 종이로 불을 쌀수 없듯이 이 사실이 즉시로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급히 많은 관군들을 풀어 농군들의 반란을 진압했다. 관군들의 칼앞에서 농군들은 이겨낼 힘과 방법이 없었기때문에 무리죽음을 면치 못했다.
다행히 리랑은 성부의 도움으로 김판서네 고간의 쌀뒤주속에 숨었기에 목숨을 구할수 있었는데 관군들이 돌아간 다음 인적이 드문 수락산속으로 숨어들었다. 물론 성부와 백년해로 언약을 맺고 함께 피한것이다. 비록 관군들이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또 관군들에게 잡히면 극형을 당할 상황이였지만 깊이 숨었기에 성부와 리랑은 부부로 결합되여 그런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낼수 있었다.
그러나 리랑의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탐관오리들을 소멸해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꼭 다시 사람을 모집하여 탐관오리들과 대항하겠다는 재거사 계획을 날에 날마다 머리속에 익히며 나날을 보냈다. …
그러던 어느날 시기가 성숙되였다고 생각한 리랑은 달덩이같은 어여쁜 성부와 리별해야 한다는 아픔이 가슴을 괴롭혔지만 자기의 속뜻을 성부에게 말했다.
《사내대장부 한번 먹은 마음을 변치 못하여 래일 떠나 일을 성사하고 찾아오겠으니 그대 부디 몸을 조심하오.》
《만민들을 생각하는 랑군님의 그 넓은 마음을 성부는 깊이 리해하나이다.》
성부가 등잔불아래에서 해진 리랑의 옷을 꿰매며 다소곳이 말했다.
《일이 성사되면 우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덩실한 기와집을 지어놓고 잘 살아 기요.》
《그날을 기다리겠나이다.》
성부는 이렇게 말하면서 리랑의 넓은 품에 머리를 묻었다.
이튿날 리랑은 꼭 백일이 되면 돌아오겠으니 기다려 달라고 성부와 약속하고 길을 떠났다.
리랑이가 떠나간후 산속에 혼자 남은 성부는 작은 밭을 일구고 그것을 가꾸면서 리랑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매일 해가 질 무렵이면 동쪽 하늘을 우러러《리랑-》하고 웨치고는 또 하루가 지났다는 표시로 나무꼬챙이로 벽에다가 한줄씩 그어놓군 하였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가면서 이런 성부의 모습은 차츰 한입건너 두입건너 수락산마을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였고 또 수락산마을에서 으뜸으로 가는 부자인 백가의 눈에도 띄우게 되였다. 속마음이 어둡고 주색에 이골이 튼 백가는 성부의 어여쁜 모습을 보고 하늘의 선녀를 보기라도 한듯이 오래동안 멍해 보던것이 싱숭생숭해나는 마음을 못이겨 그날부터 일부러 구실을 대여 성부를 찾아와 치근거리면서 성부를 꾀여내기에 온갖 술수를 다 부리기 시작했다. 성부가 백가를 피하면 피할수록 백가의 눈은 더욱 충혈되여갔다.
백가는 성부네 집에 찾아와 아래목에 버티고 앉아서는 《리랑이가 돌아올수 없다》는지 《리랑이가 죽었으니 마음을 돌려먹고 자기의 첩으로 오라》는지 《자기한테로 오면 잘살게 해주겠다》는지 라고 하면서 집작거리면서 구슬려대기를 끊지 않았다.
이런 백부자를 두고 성부는 이구실 저구실을 대면서 한두번은 속여 넘길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가 속임수에 든다는것을 눈치챈 백부자가 성부를 보고 그냥 속이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반란자 남편을 감춰두고 반란을 지지한 죄로 조정에 가서 고자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더 이상 피할 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성부는 그날도 백부자가 찾아오자 이제 며칠후 리랑의 제사만이라도 치르고 몸을 허락하겠노라 거짓말을 했다.
《길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는 랑군이라 해도 제사만은 지내는것이 안해로서의 도리가 아니오이까?》
《음, 그럼 래일에라도 당장 제사를 지내게나.》
백부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게 성급히 서두룰것이 아니라 이제 돌아오는 칠월 칠석 날이면 리랑이 소녀와 만난지 2년이 되는 날이고 또 리랑의 생일날이얘요. 그래서 그날에 제사를 드릴가 하나이다.》
성부는 있는 말, 없는 말을 엮어대면서 딱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칠월 칠석 날이라?》
백부자는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날자를 헤여보던것이 얼굴에다가 음험한 기색을 띄우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이제 닷새가 남았군. 그럼 내가 기다리겠네. 그러나 그때에 가서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이 백가가 무정하다고 탓하지 말게나.》
《알겠나이다.》
성부는 백부자를 어서 빨리 보내고싶은지라 되는대로 대답했다.
백부자가 돌아가자 자리에 누운 성부는 이제 칠월칠석날에 제발 리랑이 꼭 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날이 바로 리랑이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간 백날이 되는 날이였기때문이다.
이튿날도 예전과 다름없이 해질무렵 동녘하늘을 우러러《리랑》을 부르면서 꼭 기약한 날자대로 오기를 바랐다. 한편 마음은 연약하지만 성격이 곧은 성부는 만약 리랑이 그날 돌아오지 못하면 백부자에게 몸을 더럽히기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칼까지 준비해놓았다.
어느덧 닷새가 지나 칠월칠석날이 되였다.
리랑의 거짓 제사가 치러지는 이날, 백부자는 일찌감치 성부네 집에 와서 방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성부는 부엌에서 음식을 마련하는체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지도 오래고 밤은 점점 깊어가는데도 리랑은 시종 나타나지 않았다.
《과연 정말 그이가 객지에서 잘못되였단 말인가? 아니 그럴수 없어… 오늘이 꼭 백날이 되는 날이니 그이는 꼭 돌아오실거야!》
성부는 조마조마한 마음이지만 자기를 진정하면서 출입문쪽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한편 밤이 깊어지자 제 욕심을 채울수 있다는 기대감에 백부자는 성부더러 빨리 제사를 치르라고 성화를 해댔다.
바로 이때 인기척과 함께 한 사내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리랑이가 돌아온것이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리랑은 백부자가 성부밖에 없는 자기집에 와서 있는것도 그렇겠지만 자기에게 준비한 제사상을 성부가 백부자에게 갖춰주는 술상으로 생각하고 그사이 성부가 백부자와 부정한 짓을 저지르면서 지낸것으로 잘못 알았다.
리랑은 눈에서 불찌를 떨구면서 다짜고짜로 칼을 꺼내 백부자의 가슴에다 박았다. 그다음 다시 칼날을 성부에게로 옮겼다. 그러나 리랑은 차마 성부를 죽일 수 없었던지《에라, 나는 간다》라는 말을 남기면서 훌쩍 문을 나서는것이였다.
《여보세요. 랑군님 왜 이렇게 나를 두고 떠나시나요?》
성부가 뒤쫓아 나와보니 리랑이 벌써 뒤산고개를 넘어가고있었다. 성부는 맨발바람으로 《나를 두고 떠나는 님(我離郞)》을 부르면서 따라갔으나 끝내 리랑을 따라잡지 못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성부는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리랑을 찾아 산속을 헤매다가 결국 자결하고 말았는데 그때로부터 아리랑노래가 생겼다고 한다…
이외에도 아리랑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모두 슬픈것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진 애절한 사랑과 한은 무게를 재여볼수도 만져볼수도 없는것이기에 이야기로 엮어내고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사람들이 토해낸 피덩이! 그것이 바로 전설에 얽힌 아리랑이다.


